반응형
Notice
Recent Posts
Recent Comments
Link
«   2024/12   »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31
Tags
more
Archives
Today
Total
관리 메뉴

더가즈아

6.25 전쟁에서 미군 전차 5대 빌린 사연 본문

밀리터리

6.25 전쟁에서 미군 전차 5대 빌린 사연

author.k 2020. 6. 25. 16:03
반응형

 



때는 6.25전쟁 초반 9월초, 장소는 낙동강 방어선

그 낙동강 방어선의 막바지 영천대회전때의 일입니다.




당시 영천은 매우 중요한 곳으로 이 영천이 북한군에게 넘어갔을 시

바로 대구 후방으로 일거에 낙동강 방어선을 무너뜨리거나

경주라인으로 진추래 동해안을 따라 바로 부산을 공격할 수 있었습니다.

한 때는 영천이 북한군에 넘어갔었는 데 이즈음 미국은 New Korea Plan을 짜게됩니다.




바로 태평양 한 가운데 서사모아로 한국정부를 망명시키는 계획입니다.

정예사단을 차출하고 정부요인 및 군가족 등 약 60만 명정도를 서사모아로 이주시키는 겁니다.



휴가가기 좋아보이긴 한데.....

아무튼 극비에 기획된 계획이었기에 미 정부는




이승만 대통령에게 조차 알리지 않았습니다.

 

 

이 일화의 등장인물인

 



정일권 참모총장은

 

 



워커장군에게 들었고(다른 미국 정보장교에게 들었단 말도 있습니다.)

 

 



워낙 중요한 사안이라 알리지 말라했는데도 이승만 대통령에게 보고했다합니다.

(저 계획을 듣고 내가 앞장서서 부산을 사수할 거라고 얘기는 했다는데...)

 

 

 


아무튼 6.25 전투에서 안 중요한 전투가 없지만 인천상륙작전까지 취소당할 수 있었던 영천전투를 맡은 것은



유재흥 군단장

이 일화의 주인공입니다.

 

 



영천을 뺏고 뺏기는 와중에 정일권 참모총장은 현장에 나가 유재흥 군단장을 만납니다.




머리 속에 전차생각밖에 없던 유재흥 군단장

그는 병사들에게 우리도 전차가 있다고 보여주고 싶었고,




실제로 게이 미1기병사단장을 찾아가서 전차 1개 소대(5대)를 빌릴수 없겠나고 물었지만

거절당했습니다.

※ 당시 미8군은 전차 600대쯤 보유하고 있었고 사단마다 100대 있을거라 예상




이 얘기를 들은 정일권 참모총장은 대구에 있는 워커장군을 찾아가

게이 소장은 기사도 정신도 없으니 배워두라고 충고했고




워커장군은 평소 얌전하던 사람이 쎄게 나오니 놀라면서도

게이 소장에게 전화를 걸어 전차소대를 빌려주라고 했습니다.




그렇게 빌린 M26전차 5대는 막 공격하러 출발하려던 우리 병사들 앞에 나타나 반나절동안 있다가 복귀했습니다.


뭐 영천전투는 이겼으니 제가 이글을 쓰고 있겠지요.



한편



워커장군은 위 패튼장군 밑에 있으면서 2차대전 벌지전투까지 참가할만큼 전차에서도 밝았는데

전차를 빌려주라 하면서도 걱정을 했다고 합니다.

보전연합의 경우 보병 사령관이 제대로 하지 못하면 전차를 제대로 못 쓴다는 거지요.

하지만 한국군은 어렵게 빌려온 전차 활용을 잘 했고 워커장군이 뒤늦게 놀라며 칭찬했다는 후일담이 있습니다.

반응형
Comments